책 <푸투라는 쓰지 마세요>



더글러스 토머스 지음, 정은주 옮김, 도서출판 마티,  2018-11-29


2018년에 작업한 책.
그래픽 디자인이 전문 분야라 타이포그래피도 오래전부터 다뤄왔지만 늘 어렵다.
CA에서 출간한 『타이포그래피, 새로운 발견과 시도』를 공역했고 그게 타이포그래피 관련으로는 거의 첫 작업이지 싶은데 2011년에 나왔다.
그나마 이 책 작업할 때는 타이포그라피학회에서 펴낸 『타이포그래피 사전』이 나와 있어서 많은 참고가 되었다.

업데이트를 너무 늦게 해서 책 홍보는 생략하고 옮긴이의 글을 올린다.


 얼마 전 패션 브랜드 셀린느(CELINE)의 로고 변경이 화제를 모았다. 자간을 조정하고 글자 형태를 미세하게 다듬은 것을 제외하면 큰 변화는 없었지만 É의 악상(accent)을 제거한 것이 많은 이들의 분노를 샀다. 그리고 이는 새로 부임한 디렉터의 갖가지 행보와 맞물려 ‘더 이상 내가 알던, 내가 좋아하던 셀린느를 볼 수 없게 되었다’는 탄식이 소셜미디어에 흘러넘쳤다. 때마침 이 책의 번역을 마친 시점이어서 타이포그래피는 곧 정통성 인증을 의미한다는 저자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비슷한 일은 다른 브랜드에서도 심심찮게 일어나며 충성도 높은 고객일수록 변화를 쉽게 납득하지 못한다. 바꿔 말하면 정통성의 와해로 받아들인다.
 나사는 푸투라를 사용함으로써 우주인들에게 어떤 메시지가 나사에서 작성된 것임을 효과적으로 전달했고, 나이키 역시 특유의 타이포그래피 스타일로 어떤 상품이 나이키의 것임을 한눈에 알아보게 한다. 이처럼 타이포그래피가 권위와 정통성을 확증하는 수단이 된다는 점은 우리 주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지난 지방선거 당시 논란이 되었던 녹색당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의 포스터는 선거 홍보물 디자인의 관습적인 문법을 벗어나 있었다. 여성 폭력에 반대하는 하얀 리본 캠페인의 리본 모양을 본떴다는 시옷 자를 비롯해 역대 어느 선거 포스터에서도 볼 수 없었던 스타일의 타이포그래피는, 비난의 화살을 받았던 ‘시건방진’ 인물 사진과 더불어 파격의 요소로 기능했다. 힐러리 클린턴의 캠페인이 그랬듯 후보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글자의 형태에 담아낸 것이다.
 관습과 권위에 도전하는 방법은 반대 방향을 취할 수도 있다. 즉, 새로운 대항적 형식으로 맞붙기보다는 패러디를 공격의 무기로 삼는 방법이다. 이 책에는 이미 어떤 힘이나 무게를 지닌 시각 언어를 전유해 전복한 사례들이 나온다. 그런데 전유의 고리는 돌고 돌아 다시금 견고한 문화적 영향력을 구축하기도 한다. 광고 언어를 가져와 소비주의를 비판했던 바버라 크루거의 타이포그래피를 또다시 전유한 슈프림이 대표적인 예다. 로고가 찍힌 벽돌을 판매하기도 했던 슈프림은 최근 심지어 『뉴욕 포스트』와 협업해 1면에 로고를 넣음으로써 신문을 순식간에 동나게 했다. 슈프림은 그간 진보적인 입장을 취해왔지만 『뉴욕 포스트』는 보수 성향의 신문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현상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 책은 우주 계획, 정치, 패션, 예술 등을 넘나들며 누구에게나 친숙한 실례를 풍부히 제시하면서 타이포그래피와 서체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고, 하고 있는지 파헤친다. 그리고 추천사를 쓴 엘런 럽튼의 말대로 일상에서 마주치는 서체를 전과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한다. 서체는 어디에나 있지만 전문가가 아닌 이상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푸투라처럼 오랫동안 널리 쓰인 서체가 얼마나 복잡다단한 의미와 역사를 품고 있는지, 하나의 서체를 통해 사회와 문화를 읽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대부분의 사람은 생각조차 해본 적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마치 몰랐던 언어를 깨친 듯 타이포그래피를 흥미진진한 고찰과 탐구의 대상으로 대하게 될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덧붙여, 타이포그래피와 관련한 용어의 번역은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에서 편찬한 『타이포그래피 사전』(안그라픽스, 2012)을 주로 참고했다. 외래어 표기는 기본적으로 국립국어원의 규정을 따르되 브랜드명, 회사명 등의 일부 고유명사는 예외로 했고 ‘type’이 들어간 단어는 모두 ‘타입’으로 통일해 표기했다.

2018년 11월
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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